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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휴일〉 리뷰|왕족의 하루 탈출, 평범한 사랑의 기억

by 이유엔 2025. 5. 13.

1953년 고전 명작 〈로마의 휴일〉은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의 환상적인 호흡 아래, 로마를 배경으로 한 단 하루의 로맨스를 섬세하게 그려낸 영화다. 왕녀와 기자의 만남이라는 동화 같은 설정이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를 되짚는다.

 

〈로마의 휴일〉은 어떤 영화인가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로마의 휴일〉은 전 세계 로맨스 영화의 기준이 된 작품으로, 1953년 흑백 필름으로 개봉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초월한 감성을 품고 있다. 이 영화는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자유를 꿈꾸는 왕녀와 현실적인 기자가 만들어내는 짧지만 강렬한 감정의 여정을 담았다. 오드리 헵번은 이 작품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르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그녀가 연기한 앤 공주는 이후 수많은 작품에서 ‘현대적인 여성 캐릭터’의 원형으로 남았다. 영화는 로마를 국빈 방문 중이던 왕녀 앤이 외부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는 충동에 의해 왕궁을 탈출하며 시작된다. 그녀는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미국인 기자 조 브래들리(그레고리 펙)와 함께 로마 곳곳을 돌아다니며 ‘일탈’을 즐긴다. 기자는 처음엔 특종을 노리고 접근하지만 점점 앤에게 진심이 생기며, 단 하루의 로맨스가 시작된다.

 

줄거리 요약|자유를 꿈꾼 왕녀, 진심을 숨긴 기자

영화는 앤 공주의 일탈로 시작된다. 수면제를 복용한 채 왕궁을 빠져나온 앤은 낯선 거리에서 조 브래들리와 우연히 마주친다. 조는 그녀가 왕족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하룻밤 잠자리를 제공하고, 다음 날 신문을 통해 정체를 알아채고는 스쿠터를 타고 로마를 누비며 ‘왕녀의 일상 체험’이라는 독점 기사를 쓰기 위해 동행한다. 하지만 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평범한 사람처럼 하루를 살아가며, 조는 점점 그녀의 자유로운 영혼에 매료된다.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 스페인 계단 등 이탈리아 로마의 대표적인 명소들이 배경이 되어 둘의 감정은 점점 짙어지지만, 앤은 왕녀로서 돌아가야 할 위치를 인식하고 결국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영화는 그 어떤 로맨틱한 대사보다 조의 기사 한 줄과, 기자회견장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을 통해 둘의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시대를 초월한 감성, 그리고 로마라는 무대

〈로마의 휴일〉이 오랜 시간이 지나도 고전으로 남아 있는 이유는 단순히 오드리 헵번의 아름다움이나 로맨틱한 설정 때문만은 아니다. 이 영화는 ‘자유’와 ‘신분’, ‘현실과 감정’이라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우아하게 담아냈다. 앤 공주는 단순한 공주가 아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싶어 하는 현대적인 인물이며, 조는 비겁함과 인간적인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현실적인 남자다. 그리고 이들의 감정이 로마라는 도시에 스며들며, 도시 전체가 사랑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특히 스쿠터 장면, 입맞춤 직전 멈추는 순간, 마지막 기자회견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흑백 영상 속에서도 감정의 결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전달되며, 이는 오늘날 컬러 영화보다도 훨씬 진한 울림을 준다.

 

〈로마의 휴일〉이 남긴 사랑의 방식

〈로마의 휴일〉은 말한다. 사랑은 반드시 이뤄져야만 하는 게 아니며, 짧아도 진심이면 충분하다고. 앤과 조는 사랑을 선택하는 대신, 각자의 길을 존중하는 방법을 택했다. 결혼도, 해피엔딩도 없이 끝나는 이 영화는 오히려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아름답다. 둘의 이별은 상처가 아니라 기억으로 남고, 그 하루는 평생 잊히지 않을 감정으로 남는다. 이 영화가 여전히 현대인에게 유효한 이유는, 누구나 한 번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로마의 휴일〉은 그것을 ‘일탈’이 아닌 ‘가장 찬란했던 진심’으로 기억하게 한다. 그리고 여운은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에도 쉽게 가시지 않는다.